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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의 작가', 독서가 창작임을 증명하다."
[불멸의 저자들] 보르헤스
창틀에 머리 부딪히고 패혈증 앓은 뒤 시·서평 벗어나 단편 창작에 나서
페론 대통령 비난했다가 사서직 쫓겨나… 국립도서관장 임명됐을 땐 시력 거의 잃어

그는 '죽은 후에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원했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달리, 그는 '죽지 않는 사람'이 되어 오늘날 전 세계의 매체에 거의 매일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다.

보르헤스의 작품집 '픽션들'(1944)과 '알레프'(1949)는 각각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경험이나 책, 혹은 이 둘을 통해 세상의 현실에 접근한다. 보르헤스가 책의 세계를 선호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 '도서관의 작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1899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양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9살에 이미 오스카 와일드의 영어 단편을 스페인어로 번역했을 정도로, 집안 분위기는 지적이었다. 

그는 직접 경험보다는, 독서를 통해 다양하고 보편적이며 폭넓은 관점을 습득하면서, 이 세상은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인식은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는 '알레프'가 존재한다거나 하느님이 유다가 되길 선택하는 이단적이고 신성모독적인 상상('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중)을 하게 만든다.

보르헤스가 단편소설을 통해 불멸의 작가로 남게 된 것은 1938년에 일어난 사고로 시작됐다. 부친이 그랬듯, 보르헤스도 심각한 약시였다. 그해 크리스마스, 그는 창틀에 머리를 부딪혔고, 상처가 덧나면서 한 달 이상을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맸다. 회복이 되자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 온전한지 걱정됐다. 그때까지 시와 서평만 주로 썼던 보르헤스는 새로운 것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그 결과가 소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이다.

이 작품은 '돈키호테'의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옮겨 적는 20세기 작가에 관해 다룬다.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이 글자상으로는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지만, 보르헤스는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에 쓰인 '돈키호테'가 17세기의 '돈키호테'보다 훨씬 더 의미가 풍부하고 심오하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보르헤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이라는 종래의 글쓰기 행위를 부정했다. 또한 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지평선 속에서 구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그는 독서를 창작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둘 사이의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고갈된 모더니즘 문학에 새로운 미학을 제공했다. 그렇게 아직 문학 속에서 얼마나 많이 '말할 것'이 남아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있는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죽음으로 신음하던 모더니즘 문학을 구원해준 이 작품을 기점으로 보르헤스는 단편소설로 선회하고,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원형의 폐허''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같은 대표작을 발표한다.

흔히 보르헤스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환상 문학의 대표자이며, '세상의 진리를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이론도 결국 환상 문학의 한 갈래'라는 탈중심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보르헤스가 사용한 '미로' 개념은 그 사상의 집약체이다. 미로는 이해 불가해한 우주의 상징이다. 그는 우주 혹은 현실의 질서를 지배하는 법칙을 감지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 때문에 인간들은 자신이 정리한 법칙에 따라 '현실'을 고안해 냈다고 설파한다.

그는 한때 도서관 사서였으나 후안 페론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 물론 사표를 내고 그는 대중 강연을 하다가, 이후 페론 정권이 무너지자 복권돼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때 그의 시력은 거의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이제는 정설이 된 이런 견해로만 그의 가치가 끝난 것은 아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 영역이 개척되고 있다. 즉, 보르헤스의 작품은 화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아직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생동하는 작품이며,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예언적 작품이다. 가령 복수의 저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틀뢴의 백과사전('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중)을 보면, 대중이 만들어가는 위키피디아가 떠오른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표정이 낱낱이 기록되는 푸네스의 기억('기억의 천재, 푸네스' 중)은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를 연상시킨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소장한 '바벨의 도서관'을 보며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를 생각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을 읽으며 보르헤스가 인터넷을 발견했다고 상상하는 건 너무 황당하고 일탈적인 독서일까?



  등록일 : 2014-06-13 [16:03]  [뒤로] [인쇄]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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