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은 물론 동맹을 돈과 물질적으로 계산하는 '트럼프 리스크'에도 대처해야 아마추어적 외교 그만두고 정부 외교정책 전면 리셋해야"
   
니어재단과 조선일보가 26일 공동 주최한 '니어와치포럼'에 참석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악화일로에 빠진 한·일 갈등으로 한·미 동맹까지 망가지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외교 정책 방향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격화하는 미·중 무역 전쟁,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북·미·중·일·러에 휘둘리는 '오면초가(五面楚歌)'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도 참석했다.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니어재단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니어와치 포럼의 제2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안호영 전 주미 대사, 김기정 연세대 교수,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맨 아래는 이혜정 중앙대 교수. /이태경 기자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인해 한·일 갈등이 더 악화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하면서 '국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무슨 국익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는 오히려 한·미 동맹에 지장을 줘 우리 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북한과의 종전 선언도 주한 미군 주둔의 명분을 약화해 미군 철수와 동맹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신각수 전 외교부 1차관은 "한·일 관계 악화로 북방 3각(북·중·러)과 맞서는 남방 3각(한·미·일)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트럼프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행정부와 달리 동맹을 돈과 물질적으로 계산하려는 식의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미 동맹 관리에 보다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미국이 우리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더 노골적으로 요구해 올 수 있다"면서 "그 과정에서 한국 내 반미 감정이 커지고 양국 관계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안호영 전 주미(駐美) 대사는 2012년 1차관 시절 경험담을 소개하며 "문재인 정부가 냉정하게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차관 시절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 대사가 외교부에 항의하려고 찾아온 적이 있다"면서 "당시 그에게 '프로페셔널 투 프로페셔널(전문가끼리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싸움을 하지 말고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며칠간 중국 관영 매체 CCTV의 헤드라인을 점령한 게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었다"면서 "CCTV가 '한·미·일 군사 동맹 훼손될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에 이게 중국 정부의 시각인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대일, 대미뿐 아니라 외교 정책을 전면을 리셋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설명하며 자존심 훼손 등 비외교적 언사를 하는 모습에 경악했다"면서 "이렇게 아마추어적 외교로 반미·친중·친북·반일 기조를 계속 하다 보면 한국은 결국 열강의 복합적 외교 무대인 동북아에서 외톨이가 돼버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냉전 시대를 거치며 굳어지고 익숙해진 외교 방식에서 '다른 시도는 할 수 없을까'라는 자세로 새로운 길  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이전과 다른 한·일 관계, 더 나아가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최근 정부가 외교를 국내 정치에 악용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는 우리의 명줄'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곱씹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