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전쟁 정전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과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OK and the USA)을 맺은 지 70주년이 되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때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으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후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교착됐고 결국 1953.7.27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3년여의 전쟁에서 미군 3만3천여 명을 포함해서 200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온 뒤였다. 정전협정에 이어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공식적인 한미동맹이 출범했다.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이승만 대(對) 미국'의 갈등은 약소국이 살아남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교과서였다. 李 대통령은 미국을 압박할 카드 두 가지를 찾아냈다. 하나는 국군 단독으로 북진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은 독자 전쟁이 불가능했다. 전쟁 유류가 단 2일 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단독 북진을 선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그것만이 공산 세력의 재침을 막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보았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카드는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1953.6.18 약 3만 5천 명의 반공포로들을 전격적으로 석방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정신착란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휴전협정 체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는 조치였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력히 요구하는 李 대통령의 神의 한 수였다. 느긋하고 배포가 두둑한 처칠 수상이 식사 중에 숟가락을 떨어뜨렸을 정도였다니 그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대통령의 對美투쟁은 한미관계를 파국 직전까지 몰아갔고, 급기야 미국은 李 대통령을 제거하는 ‘에버-레디 계획(Plan Ever-Ready)’을 극비리에 준비까지 했다. 美 국무부, 국방부, 합참이 참석한 백악관 회의에서 격론이 이어졌다. 격론끝에 李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6·25전쟁을 중단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런 결론이 나기에는 수십 년 미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축적해 둔 종교계와 군부를 비롯한 미국 조야에 두루 포진해 있던 이 대통령의 인맥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한미동맹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던 老 대통령의 노련한 叡智와 벼랑 끝 전술로 이뤄낸 것이다. 이로써 한미동맹은 巨步를 내딛게 되었다. 李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적중되었다. 한미동맹은 국민의 피와 모든 것을 건 한 지도자의 결사적 노력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는 핵심축 역할을 해왔다. 튼튼한 안보의 토대 속에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전쟁 직후 6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980달러로 5백 배 가까이 뛰었고, 국내총생산은 1조 9천억 달러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옥수숫가루 등 미국의 잉여생산물(PLO-480)을 원조받아 배고픔을 해결하던 국가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국가가 되었다. 한미 양국 모두의 승리였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적 안보가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李 대통령이 있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초기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원만 받던 한미관계는 월남전과 이라크전 파병 등을 계기로 서로 도움을 주는 동반자 관계에 이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됐는데, 군사안보분야를 넘어 경제안보와 문화콘텐츠까지 개념을 넓힌 것이다. 특히 지난 4월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선언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맞서 한미동맹이 핵을 포함한 상호방위 개념으로까지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평택 미군기지를 두고 보수-진보 간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지난 7.27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보수·진보단체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평택기지수호 국민대회’를 열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한미동맹강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반면에, 진보단체는 “한반도 전쟁 위기를 불러오는 미군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외치러 가자”고 주장하면서 분홍색 천을 들고 평택 미군기지 주변을 에워싸는 ‘평택인간띠잇기’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안보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수십만 건 위반했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은 종전이 아닌 정전의 의미를 일깨웠다. 아직도 우리는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최근 북한은 탄도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7차 핵실험도 언제든 감행할 태세다. 그러나 이념대결과 지역갈등으로 국민은 분열되어 있고 정치권은 정쟁과 괴담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가안보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힘에 의한 평화만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가져온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단결과 튼튼한 안보 그리고 굳건한 동맹과 우방과의 공조가 절실한 때이다.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에 대한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며 분단의 역사에서 평화통일의 역사를 만드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영진 논설위원
통일정책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