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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생활(가정, 여가, 의, 식, 주)"
1)가정생활
북한은 ‘가족법’ 제1조에서 “가족은 사회주의 혁명이론의 실습장이며 생산의 최저단위”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북한은 정권수립 초기부터 가족의 형태를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제도에 알맞게 변형시키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구체적 사례가 ‘호적제도의 말살’과 ‘가정의 혁명화’사업이다. 
북한은 호적제도와 친족개념이 봉건제도의 잔재라는 이유를 들어 1946년 9월 1일부터 호적제도를 폐지하고 공민증제도를 새로이 실시했다.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간의 서열구조와 조상숭배 풍습 등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사회주의 건설의 장애요인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친족의 범위도 6촌까지로만 제한했으나, 1990년에 제정된 가족법에서는 친척을 8촌까지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가정의 혁명화’는 가정을 가족이 함께 가꾸어 가는 삶의 보금자리로서가 아니라 2세들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초조직으로 내세우려는 일종의 정치구호이다. 북한은 1968년 3월 개최된 여성동맹회의에서 처음으로 이 구호를 제기했으며 1970년 11월 노동당 제5차대회에서는 가정을 혁명화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여 분조 작업반 인민반을 혁명화하고 나아가서 직장과 마을 전체를 혁명화할 것을 강조하는 등 이를 보다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 구호를 앞세워 가정을 하나의 정치교육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1940·1950년대를 지나면서 토지사유제도의 폐지, 재산상속의 금지 등 사회주의적 개혁정책과 사회주의 공업화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가족 중심의 경제활동이 사회적 경제활동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해 가족의 의미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변질되었다.
2)여가생활 
북한에서는 집단주의 원칙에 따라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원천적으로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여가생활 역시 자유민주주의 사회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북한 주민들은 직장과 관련한 사회단체 등의 조직원으로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 
즉 북한 주민들은 통상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8시가 넘어야 직장에서 귀가할 수 있으며, 귀가한 후에도 인민반에서 실시하는 각종 노력동원사업과 가정외화벌이사업 그리고 사상교양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더욱이 북한은 이와 같은 일상적인 일과와는 별도로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른바 자력갱생의 원칙에 의거한 경제건설방식을 추진함에 따라 직장생활과는 별도로 주민들을 수시로 각종 건설현장에 동원한다. 
정치적·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북한에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여가생활을 위해 마련된 시설마저도 개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당이 제시한 범주 내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은 시간·공간·내용에서 많은 제약을 받는다. 
북한주민들이 비교적 자주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로는 영화감상과 음악감상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개별적으로보다는 공장·기업소·협동농장 등 직장단위로 매주 수요일로 정해진 ‘문화의 날’에 단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례이다. 공휴일에 공원이나 유원지를 찾는 것도 북한주민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여가생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놀이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평양 등 대도시 주민들만의 특권일 뿐이다. 지방에서는 직장이나 지역단위 문화회관에 탁구대 등 간단한 체육 및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주민들이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북한주민들이 가장 손쉽게 즐기는 오락수단은 장기이다. 그리고 윷놀이와 주패놀이도 비교적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낚시·등산·사냥 등도 북한주민들이 즐기는 취미생활의 하나이나 이러한 것은 일부 특권계층에 한정된 것으로서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3)주거생활   
북한의 모든 주택은 원칙적으로 국가소유이기 때문에 주택에 대한 개인소유는 물론 개인에 의한 건축까지도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규격화하여 지은 각 등급의 독립가옥이나 아파트 등을 임대 형식으로 할당받아 생활하고 있다. 주택은 주로 특호~4호까지 5등급으로 나누어 신분에 따라 차등 배정한다. 
최고급주택인 특호주택(단독고급주택)은 당 및 정무원 부부장급 이상 또는 인민군 소장 이상의 고위간부들에게 배정된다. 4호주택(신형고층아파트)은 중앙당 과장급 및 정무원 국장급, 인민배우, 공훈예술인, 대학교수, 기업소 책임자 등에게 배정된다. 3호주택은 중급의 단독주택과 신형아파트로서 중앙기관의 지도원이나 도급기관의 부부장 이상 또는 기업소부장 및 학교교장 등에게 배정된다. 그리고 2호주택은 일반아파트로서 도급기관의 지도원과 시·군의 과장급 및 기업소의 과장급, 그리고 학교교원과 천리마작업반장 등에게 배정된다. 1호주택은 집단공여주택과 농촌문화주택 및 구옥 등이 해당되며 일반근로자와 사무원, 협동농장원, 농촌지역 주민 등에게 배정한다. 
그러나 북한의 주택부족 사정은 상당히 심각하여 신혼부부들은 결혼한 지 4~5년이 지나도 주택배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방 한칸에서 3대가 동거하는 경우도 흔하다. 주거환경 역시 낙후하여 불량화되어 있는데, 농촌의 경우 대부분 가구별로 수도와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택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은 80년대 들어 평양의 문수거리·창광거리·광복거리·통일거리 등에 대규모 고층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원산·함흥·청진 등지의 지방도시에도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택부족 사정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주택건설계획도 많은 차질을 빚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재 북한의 경제여건이 주택문제보다는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이고, 주택건설자재의 공급도 부족하고 주택건설기술도 매우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4)식생활  
북한은 1957년 11월 ‘내각결정 96호 및 102호’에 의거해 협동농장원을 제외한 모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식량배급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식성과 기호에 따른 식생활이 어려울 뿐 아니라 각자가 요구하는 개인 소비의 절대량마저 충족되지 못한다. 식량을 비롯한 모든 식료품이 주민의 성분·직위·직종·연령 등을 기준으로 구분하여 배급되고, 그 양과 질은 물론 가격까지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일반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은 유상으로 주로 쌀과 옥수수이며, 배합비율은 평양과 지방, 그리고 신분,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7에서 5:5 사이이다. 배급은 통상 15일마다 실시하며, 배급절차는 각 직장에서 발급하는 배급카드로 리·동 배급소에서 수령한다. 북한주민은 이와같이 식량공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부족한 식량을 암거래시장에서 구입 충당해야 하나 극심한 식량난으로 구입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부식의 경우에는 된장·간장·고추장 등을 부식구매카드로 식료품상점에서 구입하고, 기타 부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김치·콩나물·두부·채소 등은 식료품상점에서 임의 구입이 가능하나 공급이 잘 되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고기류는 명절 특별배급을 통하여 할당되는데 김일성부자 생일, 노동당창건일 등에 세대당 돼지고기 1~2kg, 생선류 2~3kg을 기준으로 배급대상과 시기, 그리고 수급사정에 따라서 공급품목과 수량이 달라진다. 최근들어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라 식량공급기준을 임의로 낮추는가 하면, 그나마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북한주민들의 불평불만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또한 식량배급제와 함께 자유매식을 금지하고 있어 돈이 있어도 사먹을 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은 출장 또는 여행시 반드시 양권을 소지해야만 식사를 할 수 있다. 양권제도는 1959년부터 실시되는데, 사용목적에 따라 사전에 발급을 신청하여야 한다. 양권을 발급받으면 다음 식량배급 때 그만큼의 식량을 공제하고 배급받는다.
5)의생활  
북한 주민들의 의생활은 기본적으로 배급제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획일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중앙계획에 따라 규정된 생산 및 공급기준 때문에 다양성과 유행성보다는 노동에 편리한 실용성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복장은 1960년대까지 ‘천리마 시대의 생활양식’ 준수를 강조함으로써 남자는 인민복(레닌복)과 노동복, 여자는 흰저고리에 검정치마의 한복으로 단조롭고 획일적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된 재일교포의 북송과 196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 때 한국 국민들의 옷차림에 영향을 받아 단조로운 의복패턴에서 탈피하여 색상과 무늬 등이 다양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추세는 일상복보다 외출복에서 나타났는데 1970년대 후반기 이후 주민들의 복장을 신체조건과 조화되도록 노력하기도 하였다. 
한편 남성복은 1984년 9월 합영법 발표를 전후하여 넥타이 양복차림에 이어 점퍼차림까지 등장, 과거보다 세련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북한 사회를 밝고 명랑한 사회로 비치게 할 목적으로 여성의 바지착용을 금지했는데, 이같은 조치는 결과적으로 북한 여성들에게 몸치장에 신경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북한은 1990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패션디자인 현상공모전을 개최하고 패션화보 《옷차림》을 출간하는 등 주민들의 옷차림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옷감과 옷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지방 등지에서는 비교적 구하기 쉬운 국방색이나 검정색 옷감으로 만든 옷을 해 입고 있다. 일반 노동자의 경우, 연간 1~2회 작업복 1벌씩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교원이나 각종 기사는 3~4년에 1번씩 양복지 1벌을 싸게 살 수 있다. 
 
 



  등록일 : 2002-12-15 [18:20] 조회 : 2620  [인쇄] [독자의견]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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