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은행에 가보니 대출 금리가 예전 금리 그대로인 연 8.2%라고 했다. 대출 금리는 신용등급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표준 금리에다 지점장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가산 금리를 더해 결정되는데 A씨의 표준 금리는 떨어졌지만 은행 지점장이 가산 금리를 예전보다 높은 1.4%를 적용하는 바람에 실제 대출 금리가 예전과 똑같아진 것이다. 지점장은 마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가산 금리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만기를 연장받지 않으면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점장이 가산 금리를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전결(專決) 금리(키워드)'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또 다른 중소기업인 B기업은 본사와 가까운 K은행 지점에서 돈을 빌릴 때는 표준 금리에 0.18%포인트의 가산 금리가 적용되는데, 똑같은 K은행의 공장 근처 지점에서는 0.72%포인트의 가산 금리가 붙는다. 지점장마다 전결 금리를 다르게 적용하다 보니 같은 고객이 같은 은행과 거래하는데도 지점에 따라 대출 금리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011년 한 해 동안 9개 시중 은행에서 만기를 연장한 대출 520만건의 금리 변동을 조사한 결과 지점장들이 전결 금리제도를 악용해 '바가지 금리'를 씌운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17일 밝혔다.

전체 520만건 중 지점장이 표준 금리에 비해 금리를 깎아준 경우가 34.8%로 금리를 가산한 경우(9.7%)보다 많기는 했다. 하지만 전결 금리로 깎아준 금리는 평균 0.44%포인트에 불과한 반면 덧붙인 금리는 두 배에 가까운 0.85%에 달했다.

금리를 낮출 때는 은행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내규로 한도를 둬서 지점장이 많이 깎지 못하도록 하한선을 둔 반면 금리를 높일 때는 지점장이 마음대로 올릴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라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가산 금리의 상한선이 없다 보니 최대 8%포인트까지 바가지 금리가 붙은 경우도 있었다.

금리 바가지는 대기업에 비해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많이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만기를 연장할 때 26.4%가 전결 금리로 인해 대출 금리가 올랐다. 가계 대출의 경우 6.9%, 대기업 대출은 15.3%만 지점장들이 금리를 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대출자들이 바가지 금리에 속절없이 당하는 이유는 돈을 빌리는 약자의 입장인 데다 은행의 금리 결정 구조를 잘 몰라 소비자로서 권리 행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2년 은행의 여신거래약관을 개정해 대출자의 금리 인하 요구권을 도입했지만 이 제도를 이용해 금리를 인하받은 경우가 최근 5년간 은행권 전체에 3710건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금감원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점장이 재량으로 금리를 올릴 때 가산하는 기준을 은행마다 내규로 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본점 차원에서 전결 금리 통계를 관리해 지점 간 편차를 줄이고, 가산 금리를 부과할 때 그 근거를 대출 심사 보고서에 기재하라고 통보했다.

☞전결 금리

은행 본점이 고객 신용도에 따라 정하는 표준금리에다 지점장이 자기 재량으로 가감하는 금리를 말한다. 지점장이 고객의 거래 실적과 수익 기여도, 지점 수익 전망 등을 감안해 결정한다. 대출의 경우 금리를 깎아주는 폭은 제한돼 있는 반면, 금리 가산폭에 대한 별도 기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