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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의 리더 시진핑"
가오샤오 지음|하진이 옮김|삼호미디어|664쪽|2만원

"나는 옌안(延安)에서 공산당에 입당했소. 옌안이 나를 길러주고 가르쳐주었소. 옌안은 나의 뿌리이고, 나의 영혼이오."

시진핑(習近平·59) 부주석은 2008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 참석한 산시(陝西)성 대표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의 얘기는 빈말이 아니다.

문화혁명 때 숙청된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때문에 '반동의 자식'이 돼버린 시진핑은 소년관리교육소에 끌려가 재교육을 받을 처지였다. 마오쩌둥은 때마침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의 지식청년들은 농촌으로 내려가라'는 하방(下放)정책을 지시했고, 시진핑은 열여섯이던 1969년 옌안의 시골마을에 내려가 지역 간부로 성장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정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의 아들로 곱게 자란 시진핑이 처음부터 농촌 생활을 잘 견딘 것은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 시진핑은 개에게 빵을 줬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따돌림까지 받으면서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쳤다. 가족의 설득으로 옌안에 돌아온 시진핑은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7년간 토굴 생활을 견뎌냈고 공산당에도 입당했다. 1975년 칭화(淸華)대에 진학한 시진핑의 관직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실 겅뱌오의 비서로 출발, 서른둘에 샤먼시 부시장을 지냈고, 이어 푸젠(福建)성장, 저장(浙江)성장, 저장성 서기, 상하이시 서기를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다음 달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총서기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시진핑은 덩샤오핑 개혁·개방 노선을 실천한 동부 연안 주요 지역 책임자를 거쳤고 통치스타일도 비교적 개방적이다. 하지만 당 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된 2010년 "위대한 항미원조전쟁(6·25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했고,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왜곡하고 희화화하는 그릇된 경향을 결사반대한다"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2009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는, 외국의 중국 비판에 대해 "밥 먹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무책임하게 이러쿵저러쿵 한다"고 거침없이 발언했다. 이 때문에 취임 이후 정치·외교적으로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저자인 가오샤오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에서 시진핑을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한 관리를 여러 차례 인터뷰했고, 중국 안팎의 보도와 자료를 모아 홍콩에서 책을 출간했다. 가오샤오는 필명. 



  등록일 : 2013-07-10 [15:28]  [뒤로] [인쇄]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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