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기술력만 있으면 오지(奧地)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우리 회사죠.” 이 회사 이재활(李在活) 총무이사는 ‘기술력의 힘’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탄소섬유를 활용한 복합소재를 비롯, 이를 재료로 하는 건설·철도차량의 내·외장재, 대형 파이프, 조선·항공·방위산업 소재 등을 만들고 있다. 국산 8인승 경량 항공기의 동체, 프랑스 에어버스사가 만드는 A-320 여객기의 보조 날개 등도 이 회사 제품이다. 엄청난 압력과 온도 차를 이겨내야 하는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의 탱크, 레이더기지의 레이더 돔(Dome) 같은 첨단 소재도 한국화이바의 생산품 목록에 들어 있다. 이재활 이사는 “일본 도레이, 미국 헥셀 등 세계적 소재 기업이 우리의 경쟁자지만 단 한건의 기술도입이나 제휴도 없었다”고 말했다. 기초 소재는 물론, 완제품과 제조공정에 쓰이는 생산설비까지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화이바의 기술력은 연구에 대한 창업주 조용준(趙容俊·75) 회장의 집념이 낳은 산물이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1960년대 초 병원 사환으로 일하면서 우연히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 병원 원장이 일제 낚싯대를 쌀 한 가마 값을 주고 사는 것을 보았다. 병원 옥상에 작업실을 차린 그는 일본 서적을 탐독하며 독학으로 유리섬유를 개발했다. 나중에 60만 대군의 철모를 대체하게 됐던 ‘화이바’도 그의 작품이다.

처음 독립해 공장을 차린 곳은 1972년 부산 하단이었고, 1986년 좀 더 넓은 공장부지를 찾던 중 당시 입찰에 나온 밀양 육군 10호병원 자리를 낙찰받아 밀양에 터를 잡게 됐다.

한국화이바는 창업 이후 모든 기술 개발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유명연구소나 대학의 도움을 얻은 적은 거의 없다. “경험없는 지식보다 지식없는 경험이 훨씬 낫다”는 조 회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28명 규모의 연구소가 있긴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곳은 현장이다. 조 회장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항상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연구소는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보조 역할만 수행한다. 생산 현장의 전 직원이 연구원인 셈이다.

한국화이바의 ‘현장 연구원’들은 지난해부터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선정한 3개의 중점 과제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동 자세 제어 능력을 갖춰 곡선궤도를 빠르게 주행할 수 있는 철도 ‘틸팅차량’, 물 위를 달리는 비행기로 불리는 ‘위그선’, 장애인과 노약자가 타기 쉽게 바닥을 낮춘 도시형 저상 굴절버스 등 하나같이 구현이 쉽지 않은 기술들이다.

한국화이바 연구소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정미(趙貞美·46) 소장을 제외하고는 명문대나 외국대학의 박사 출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조 소장은 “이론적 배경이 좋은 연구원이 이곳에서 몇 년 근무하면 이 분야 최고 인재로 대우를 받게 돼 대기업이나 학교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화이바의 경쟁력은 이 같은 ‘풀뿌리 기술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기술개발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마케팅이 약한 것은 흠이다. 한국화이바가 생산하는 철도차량용 불연내장재는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이 싸면서도 가볍고 불에 강하다. 하지만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가 난 뒤에야 그 사실이 제대로 알려졌다. 지금 대구지하철 차량은 모두 한국화이바 제품을 쓰고 있다. 

밀양의 향토기업이었던 유성모직, 밀양도자기 등은 사라져갔지만 한국화이바는 한국카본 등 자회사와 함께 연간 매출 1800억원, 종업원 1600여 명을 고용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해 밀양시 세수(稅收)의 2~3%를 이 회사가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