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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로(李恒老)의 사상과 역사적 의의"
【들어가는 글】

경기도 양평 지역은 한강 줄기가 동서로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이곳에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이항로(李恒老 : (1792∼1868)는 조선말기의 화서 이항로가 당시급변하는 주변 정세 속에서 어떠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대내외 정책을 전개했는가 하는 것은 매우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이항로를 위시한 주자성리학자들은   조선 당국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책결정들은 당시 조선 말기의 변화 과정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현실까지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항로의 사상】

이항로는 주자가 성립해 놓은 주자성리학을 이념적 주 논리로 접근하였다.주자성리학은 하나의 우주존재론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우주의 생성원리를 변적 요소인 이(理)와 가변적요소인 기(氣)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모두 그에 의해 결정되니 착한 것을 일으켜 세우고 악을 억제하여야 한다는 부선억악(扶善抑惡)으로, 사람과 물질의 성정(性情)을 다스려야 한다는 유교 철학이다. 퇴계를 이어받은 이율곡은 이기(理氣)의상호작용시라도 기(氣)만이 작동하고 이(理)는 기에 편승할 뿐이라는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을 주창하여 만물의 성정이 기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심화 발전시켰다.

화서는 당시 어느 정도 쇠퇴해 가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조선조 말기 주리철학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의 주리철학은 이(理)와 기(氣)를 엄격히 구별하는 동시에 그것을 차등적으로 인식하였다. 즉,‘이’가 주가 되고‘기’가 역(役)이 되면 만사가 잘 다스려져 천하가 편안할 것이나, 만일 반대로‘기’가 주가 되고‘이’가 버금이 되면 만사가 어지러워져 천하가 위태로울 것이라 하였다.

동시에 유교의 기본윤리에 따라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처럼 하고, 나라 정하기를 내 집처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나 사상은 조선조 말기 물밀 듯이 들어오는 외세와 제국주의의침략으로부터 민족을 지키려던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나아가 한국 근대사를 통해 구국운동의 실천적 지도이념과 상통하면서 이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항로 사상의 학문적 배경】

화서는 학문을 접하면서 일찍이 조선 유학자 송시열에 대한탐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여기에서 이항로가 사상적, 학문적으로 본받고자 했던 유학자가 율곡학파의 적통(嫡統)을 이어받은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항로가 본받으려 했던 송시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율곡학파인 서인들은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사회로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여진족이 건립한 청나라의 두 차례에 걸친 침략을 받게 된다. 바로 정묘(1627), 병자(1636)의 호란이다. 특히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당했다.

이 시점에서 율곡학파의 대표적 인물의 하나인 송시열은 어느 경우라도 주자학을 신봉하여 흔들림 없이 나라의 근본이념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주자학을 한 단계 높인 주자성리학 연구에 빛나는《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121권17책과《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를 저술하여 이를 힘 있게 뒷받침하였다. 또한 세도를 전수받아 효종과 함께설욕을 씻겠다고 외치며 북벌을 준비했다. 아무리 청이 명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차지했다 하더라도 이를 중화대국으로 볼 수없다는 자세를 나타내면서 주자성리학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적통(嫡統)의 자격으로   이를 계속 계승 발전시켜 나갈 자격을 갖춘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화서는 이때 우암의 저서인《주자대전차의》에 대한 일종의증보판인《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를 편찬했다. 화서가 우암의 주자학 저서에 증보판을 냈다는 것은 그가우암을 사상적 스승으로 모셨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결국 우암의 사상이나 정책결정과정들이 자연스레 화서에게 그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강경한 배타적 대내외정책 시행】

개항 이전 조선조정은 완고한 존화양이책(尊和洋夷策)으로써 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 존화양이책은 19세기 들어 신유사옥(1801), 기해사옥(1839), 병인사옥(1866) 등 여러 차례 천주교를 배척하고 박해하는 이데올로기구실을 하면서 척사윤음의 반포를 통하여 위정척사론은 더욱강경해졌다. 이것은 1860년대의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거쳐 1876년 개항에 이르는 10년간이다.

그의 사상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명청교체기 이후 유행한 송시열의 소중화사상에 입각하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대원군으로 하여금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원군의 보국양이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이항로는 75세의 고령에 병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경 즉시 4개항목의 동부승지 하직 상소인「辭同副承旨兼陳所懷疏」를 올려난국을 수습할 방안과 대응책을 제시하였다.

① 국왕이 외적을 불러들이게 된 연유에 대하여 자책(自責)과 선후책(善後策)을 정확히 제시한 교서를 반포하여 민심을 발분시킬 것.

② 대신(大臣)의 체통(體統)을 높이고, 삼사(三司:弘文館 ·司憲府 ·司諫院) 이외에도 언로(言路)를 넓힐 것.

③ 장수(將帥)를 선발하여 무비(武備)를 다스리고, 반드시 뭇 사람의 촉망을 받는 인재를 등용할 것.

④ 조선 팔도 안에 인망 있는 호소사(號召使)를 파견하여 충의기절(忠義氣節)한 인사를 모아 의병(義兵)으로 삼고 관계(官界)에 협력시킬 것.

이항로는 그 당시 제국주의 서구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조선에 대한 사회경제적 침략과 문화적 침투에 대하여,반드시 무력으로 대처해야 하며 양적(洋敵)의 침략을 대비하여비상 병농체제를 비롯한 각종 국방 방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무비무환론(武備無患論)을 역설하였다.
이항로의 국방사상인‘무비척양론’과‘양적방어론’은, 당시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던 흥선대원군으로 하여금‘척사윤음’을반포케 했다. 

또한 병인양요 직후 척화문을 작성 반포하여 척화비를 서울의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 중요 도회지에 세우게 하였다. 또한 국가의 방위력 증강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각급 무인의 선발과 훈련을 통해 무비를 강화할 것을 건의했고, 임진왜란과 율곡의 예비론의 고사를 들어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 전국8도에 각 1만 명, 서울에 2만 명의 병력을 정전제처럼 정규군이 아닌 농민병을 양성하여 양적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오는 글】

이항로의 무비척양론의 국방사상에서 훗날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하여 의병과 같은 많은 민족운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실천적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것이다.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소위‘꿋꿋한 선비정신’에 의한 의병운동이나 구국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에게 남기는 의의는 대단히 큰 것이다.

당시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노골적인 힘의 관계에 의한 위기상황이었다. 그러나 화서학파 사람들의 국제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유일한 틀은 오로지 오랫동안 믿어 왔던 주자학적 존화양이의 문화개념이었다. 특히 이항로의 대중국인식에 따르면, 청나라는 명나라의 정통을 탈취한 오랑캐에 불과했다. 병자, 정묘호란 이후 기회가오면 치욕적인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인식이었다. 이 시기에 당면한 역사적 과제는 국내의 봉건적 사회모순을 극복하는 동시에 외래자본주의 침략세력을 막아내는 일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제들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개항전의 폐쇄적 모습으로 고착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지 홍/양평역사문화연구회



  등록일 : 2017-10-23 [08:58]  [뒤로] [인쇄]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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