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씨는 갑절이나 오른 월세로는 수지가 맞지 않을게 뻔하지만 입주때 들어간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5000만원을 돌려 받을 길이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안씨는 “갑자기 임대료를 2배로 올리는 것은 장사를 그만두라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권리금을 날릴 수 없어 재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상가 임대차보호법의 내년 시행을 앞두고 건물주들의 턱없이 높은 임대료 요구에도 불구하고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때문에 할 수없이 계약을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약을 포기할 경우 거액의 권리금을 되찾을 길이 없어 결국 손해를 감수하고 임대료를 올려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14일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에 따르면 올들어 접수된 임대료 인상 피해신고사례 총 1521건중 약 81%에 해당하는 1217건이 권리금 문제가 직접 개입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730건(60%)에 달했다. 183건(15%)은 건물주가 세입자를 퇴거시키기 위한 ‘명도소송’을 하고 있었으며 재계약 조정중인 경우는 전체의 304건(25%)에 불과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상가는 24개 점포의 평균 권리금과 시설투자비가 7000만원이나 돼 세입자 모두가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 상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모(37)씨는 “시설투자비가 3억원에 달해 지난 97년 이후 매년 평균 30만원씩의 임대료인상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중간에서 권리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군포시의 한 건물주는 자신이 직접 점포를 운영한다며 세입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를 다시 다른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고 임대하는 방법으로 5000만원을 챙겼다.

하지만 권리금은 세입자간의 금전문제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어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없다. 새로 시행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도 현행법상 권리금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돼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보호받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세입자가 투자한 전기시설, 수도시설 등의 비용을 건물주에게 요구할 수 있는 ‘필요·유입비 조항’이 민법에 임의사항으로 규정돼 있지만 실제 계약에서는 무시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상가임대차 보호운동본부의 임동현 부장은 “고액의 권리금이 걸려 있다는 세입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건물주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필요비, 유입비 조항을 의무화하거나 시설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세입자 계약경신 청구권 기간을 늘리는 등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