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는 곳곳에 ‘휴대폰 공짜’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어떤 곳은 ‘최신 휴대폰 보조금 30만원 지급’이라고 붙여 놨다. 신규가입보다 번호이동 제도를 이용해 이동통신 회사를 옮기는 소비자에게 평균 5만~10만원씩 혜택을 더 주고 있었다. 매장 직원은 “우리 이익을 떼서 주는 거라 불법은 아니다”라면서도 “누가 물어보면 정가(定價)대로 샀다고 대답하세요”라고 말했다.서울 강남역 지하상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단말기 보조금 시범 운영중’, ‘휴대폰 가격 1만원부터’라는 팻말이 곳곳에 걸려 있다. 하지만 ‘시범 운영’이라는 말도 ‘보조금 지급’도 사실은 모두 불법이다. 카메라를 들었더니 세 명의 남자가 갑자기 몰려나와 “사진을 지우라”며 가슴을 밀쳤다.
정부와 국회가 단말기 보조금 금지법을 연장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지루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 유통 현장은 이미 법이 무력화된 상태다.
현재 강남역·테크노마트·용산전자상가 등 주요 매장에는 40만원대까지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한 이동통신 매장 운영업자는 “1월부터 특가 정책을 시작한 SK텔레콤의 경우 리베이트(보조금)가 최고 47만원까지 나오고 있다”며 “KTF 등 다른 사업자들도 30만원대까지 보조금이 지급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60만원대 휴대전화가 20만원대에 팔리고, 50만원짜리 최신 휴대전화를 최저 3만원에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쇼핑몰은 정도가 더 심하다. 이미 옥션 등 온라인 경매사이트에는 1000원짜리 휴대전화가 등장했다. 초콜릿폰 등 최신 인기 휴대전화는 시가보다 30만원 이상 싼 2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제 정책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통신위원회가 업체 별로 수십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지만 과당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3년 전 보조금을 금지했던 이유는 이동통신사의 지나친 ‘돈 싸움’을 방지해 과열 경쟁을 막고, 그 돈으로 설비투자를 해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모두 혜택을 얻는 선순환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통사(移通社)들이 과연 지난 3년간 기대했던 투자를 했는지에 대해 소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은 “어느 나라에도 보조금을 금지시키는 법은 없다”며 “소비자들이 더 싼 휴대전화를 살 수 있도록 업체간 경쟁을 하는 것이 시장 경제의 기본”이라고 했다.
소비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당정 합의를 했던 열린우리당과 정통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야당 역시 의원 입법을 준비 중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마련했던 ‘2년 이상 장기 가입자에게만 2년간 단말기 보조금을 허용하자’는 안은 자칫 무용지물이 될 위기다. 아예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폐지하거나, 제도는 유지하되 신규 가입자도 일정 부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시장만 혼탁해지고 있다”며 “규제를 계속하려면 산업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보조금을 왜, 얼마나 규제해야 하는지 소비자를 설득시켜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규제를 아예 없애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