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숫자지만 유독 10자리나 100자리로 끝나는 숫자엔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한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산꾼이라도 50회, 100회 산행은 기억 속 특별한 자리에 저장된다. '근교산&그너머'가 이번에 900회를 맞았다. 2012년 11월 800회를 기록한 뒤 만 2년만으로, 1996년 1월 '다시 찾는 근교산'을 시작한 이래 햇수로 19년만이다. 1993년 1월 '가볼만한 근교산'을 시작한 때로부터 보면 만 22년에 가깝고 횟수로는 987회에 해당한다. 근교산 시리즈가 이처럼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것은 근교산 기사와 함께 산행에 나서는 독자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19년 성상 버틴 힘은 독자의 성원 덕택
     
경북 군위 조림산 정상 오름길의 코끼리바위 위 삼거리를 지나면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은 눈이 시릴 만큼 시원하다. 화본리에서 산행 들머리인 덕림사 쪽으로 오는 길이 너른 골짜기를 따라 길다랗게 펼쳐진다. 
'근교산' 시리즈는 부산 근교산의 코스를 널리 알리는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과 코스를 소개했다. 마이카 시대에 따른 산행 패턴의 변화에 맞춰 부산과 울산, 경남 이외의 지역으로도 눈을 넓혀 전국의 명산을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해왔다. 또 최근의 걷기 바람에 따라 남해 바래길이나 여수 금오도 비렁길 같은 부산에서 가까운 트레킹 코스도 찾았다.

이번에 900회를 맞아 근교산 취재팀이 찾은 곳은 경북 군위군의 조림산(鳥林山·638m)이다. 이번 코스는 기존에 근교산 시리즈에서 소개한 코스에 비하면 코스 길이가 짧다. 대신 산행 들머리인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화본마을의 다양한 볼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산행에서 길고 힘든 코스를 마치면서 느끼는 성취감을 빼놓을 수 없지만, 산행지 주변의 명소를 함께 둘러본다면 한결 풍요롭고 여유로운 산행길이 되리라 본다.

조림산은 600m대 초반으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에 큰 산이 없어 빼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정상은 나무가 둘러서 조망이 어렵지만 산행하는 도중 곳곳에 조망할 곳이 있다. 남쪽으로는 가까이 팔공산이 버티고 있고 서쪽으로는 구미의 유학산과 천생산, 금오산 등을 볼 수 있다. 또 동쪽으로는 영천의 보현산이 멀지 않다. 군위군 산성면과 고로면, 의흥면에 걸쳐 있지만, 정상은 산성면과 고로면의 경계에 있다.

■낮지만 풍광 좋은 코스, 원점회귀 3시간
     
취재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조림산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서고 있다. 
이번 조림산 산행은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곡내지 저수지를 출발해 무덤 삼거리~이정표 삼거리~코끼리바위 전망대~코끼리바위 삼거리~조림산 정상~병풍바위~미륵바위~덕림사를 거쳐 곡내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다. 곡내지를 출발점이자 도착점으로 삼아 조림산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 올랐다 내려온다. 산행거리는 6㎞ 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2시간30분 안팎, 휴식을 포함하면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조림산 산행은 산성면 소재지에서 도로를 따라 덕림사 방향으로 들어가 덕림사 입구 곡내지 저수지에서 시작한다. 도로 일부는 콘크리트 포장이고 일부는 아스팔트 포장으로 도로 개설과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곡내지를 출발해 2차로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불룩 솟은 조림산 정상을 볼 수 있다. 200m쯤 도로를 올라가다가 내리막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길이 갈라진다. 들머리는 길이 희미하지만, 곧 작은 못을 지나면 숲으로 들어가며 뚜렷해진다. 산자락을 빙 돌아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낙엽이 깔려 푹신하다. 10분가량 소나무 숲으로 가면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는 왼쪽으로 갈라져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리본이 두어 개 매달려 있지만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 깊게 길을 살펴야 한다.

짧은 급경사를 내려가 작은 계곡을 건너 올라서면 무덤 뒤로 길이 이어진다. 곧바로 무덤이 또 나오는데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간다. 희미한 길은 작은 계곡 옆으로 이어진다. 무덤 2기를 지나 20~30m 두꺼운 낙엽으로 덮인 길을 오른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 방향으로 오른 뒤 오른쪽으로 가면 곧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덕림사에서 올라오는 넓고 뚜렷한 길과 만난다. 정상(1.7㎞) 방향은 왼쪽이다. 사면을 가로질러 평탄한 길을 잠시 가면 다시 이정표 삼거리다. 오른쪽 계단으로 오른다. 여기서부터 길이 가팔라진다. 10분 정도 올라 고도 400m를 넘기면 조금씩 나무 사이로 조망이 열린다.

■주변 팔공산 금오산 보현산 등 잘 보여
     
덕림사 오층석탑과 고즈넉한 덕림사 경내 풍경. 
로프 난간이 설치된 바위 사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코끼리바위 전망대다. 남쪽인 왼쪽으로 팔공산 비로봉이 살짝 보이고 남서쪽에서 서쪽으로 유학산과 천생산, 멀리 금오산이 보인다. 코끼리바위를 지나면 곧바로 능선 위 이정표(정상 1.2㎞)가 선 코끼리바위 삼거리다. 정면에 정상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이후로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차츰 고도를 높인다. 틈틈이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곳을 지난다. 경사가 조금 가파른 곳을 올라가면 정상 0.2㎞ 이정표를 지나 벤치가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에 선다. 왼쪽 맞은편 봉우리는 옥녀봉이고 그 뒤로 멀리 보현산이 보인다. 11시 방향에는 화산산성이 있는 화산이다.
     
조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공산 비로봉. 
살짝 내려섰다가 소나무 숲 오르막을 잠시 가면 조림산 정상이다. 나무들이 둘러서 시원한 조망은 어렵다. 조그마한 정상석과 이정표, 무덤이 있다. 하산길은 무덤을 지나 직진이다. 곧바로 급경사가 시작된다. 낙엽이 살짝 덮여 미끄럽다. 내려가는 길 정면에 팔공산이 길게 누워 있다. 바윗길 급경사를 내려와 경사가 조금 누그러지는 곳에 이정표(병풍바위 0.1㎞)가 선 곳에서 길이 갈라진다. 병풍바위 방향으로 직진한다. 잠시 뒤 조망이 탁 트이는 병풍바위다. 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덕림사가 내려다보인다. 바위를 돌아 내려가면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바위의 위용을 올려다볼 수 있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미륵바위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길을 내려간다. 고려 시대 오층석탑이 있는 덕림사에서 콘크리트 도로를 잠시 내려가면 곡내지에 닿는다.

◆떠나기 전에

- 추억 낭만 가득한 화본마을 둘러볼 만
- 화본역·폐교 개조한 추억박물관 등 즐비
     
1936년 완공된 화본역 역사와 증기기관차용 급수탑. 화본마을은 작고 한적한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간이역과 레일카페, 급수탑, 폐교한 중학교를 활용한 화본 근현대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중앙선 화본역은 전국의 아름다운 간이역 가운데 손꼽히는 곳으로 역사와 주변에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1930년대 만든 높이 25m의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은 담쟁이가 덮은 고풍스러운 멋으로 사진작가들의 발길을 끈다. 인근의 일본식 목조 가옥인 화본역 옛 관사에서는 숙박 체험도 할 수 있다.
     
폐교된 산성중학교를 개조한 '엄마아빠어렸을적에'.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쓴 고장인 만큼 골목길에 삼국유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린 벽화들을 보는 건 또 다른 재미다. 화본역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옛 산성중학교를 활용해 만든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도 찾는 이가 많다. 단순히 1960, 1970년대의 물건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체험학교이기도 해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흥미로운 것은 박물관 운영과 농산물 판매 등을 주민이 만든 마을기업에서 한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마을 안과 도로변에 있는 고인돌과 마을 뒤 산기슭의 충의공 엄흥도 묘소도 찾아볼 만하다. 충의공 엄흥도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갔을 때 영월부의 호장으로 있었다. 1457년 단종이 사약을 받고 숨지자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 속에서 세 아들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교통편

- 대구~포항 고속道 청통와촌IC 이용
     
'엄마아빠어렸을적에' 내부에 전시된 포니2 자동차.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화본마을까지 가더라도 산행 들머리인 곡내지까지는 3.5㎞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왕복하면 산행 거리만큼 더 걸어야 하는 셈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 서울 방향으로 간다. 곧바로 도동분기점에서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탄다. 청통와촌IC에서 내려 919번과 908번, 79번 지방도를 이어 타고가면 산성면 소재지에 닿는다. 마을 입구 회나무 쉼터 옆 회나무상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덕림사 아래 곡내지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화본역을 입력하면 보통 거리가 짧은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영천IC에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하지만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청통와촌IC에서 내려 찾아가는 게 도로 사정이 낫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불편하다. 부전역에서 오전 7시20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10시23분 화본역에 선다. 하지만 부전행 열차가 낮 12시41분에 출발해 산행시간에 맞출 수 없다. 버스를 이용하더라도 부산(동부터미널)에서 군위로 가는 버스가 오후 5시 한 편밖에 없다. 군위에서 산성면으로 가는 군내버스도 운행편수가 적어 이용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