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금강산 관광은 외금강 지역에만 국한됐었다.외금강이 남정네의 근육처럼 억센 모습이라면, 내금강은 오밀조밀한 여인의 이목구비다. 절벽과 계곡은 비단에 자수를 놓은 듯 섬세하다.남쪽 관광객은 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 이후 9년 만에 내금강까지 발을 디딜 수 있게 됐다.

군사분계선 한귀퉁이를 살짝 트고 가는 여행이다. 돌처럼 서 있는 북한군 뒤로 금강산 자락이 선명하다.

# 바위와 폭포의 운치 경연장 …만폭동

내금강 관광은 버스 이동과 도보 산행으로 나뉜다. 외금강 호텔이 있는 온정각에서 온정령(859m)까지는 버스가 다닌다. 버스는 106개 구비를 도느라 쉴 새 없이 기우뚱거린다. 멀미가 걱정돼 눈을 지그시 감는 건 큰 손해다. 곰바위, 말바위, 귀면암 등 만물의 형상이 바위에 나타난 장관을 놓치기 때문이다. 바위는 저마다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귀신 얼굴처럼 괴기스러운 귀면암은 악인과 선인을 가린다고 한다. 성품이 곱지 않으면, 그날 밤 꿈에 귀면암이 출현한단다.

1시간40여분의 여정 끝에 버스가 온정령을 넘었다. 가까이에 표훈사가 보인다. 여기서부턴 잎사귀를 손으로 만지고 폭포 소리를 들으면서 산행한다. 표훈사는 신라 문무왕 10년에 세운 사찰로, 금강산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전쟁의 참화를 피했다. 경내엔 안개가 어슴푸레 퍼져 있었다. 절 뒤로 구름에 둘린 채 우뚝 버티고 있는 오선봉이 보인다. 마치 겸재 정선의 수묵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등산길은 대체로 만만하다. 숨이 가빠지는 구간이 거의 없다. 표훈사 옆 금강문을 통과하면 우렁찬 만폭동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편평한 바위가 무대처럼 놓여 있고, 절벽과 폭포가 그 주변을 꾸민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란 속담이 나온 이유를 알 것 같다. 전설을 입증하듯, 바위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나무꾼이 도인들의 대국에 넋을 놓다 40년을 지나쳐 버린 자리라고 한다. 만폭동은 약 1.2㎞의 계곡에 8개의 담(潭)이 죽 이어져 있다. 흑룡담, 비파담, 벽파담 등 만폭 팔담의 물 부서지는 소리가 산행을 개운하게 한다.
 
# 금강산 속 불교 예술… 보덕암, 묘길상

만폭동 분설담에 이르면 자연법칙을 벗어난 듯한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높디높은 절벽에 암자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보덕암은 20m가 넘는 절벽 꼭대기에 7.3m의 구리기둥으로 받쳐져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질세라 인간이 한껏 기교를 부린 듯하다. 자연과 인간이 각각 최고의 걸작을 한곳에 출품한 꼴이니, 절경 중의 절경이다.

계곡 옆으로 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이 길은 마하연 터와 묘길상으로 뻗어 있다. 걷는 내내 산새 울음이 들리고, 늘씬한 전나무가 곁을 떠나지 않는다. 20분쯤 걸으면 마하연의 공덕비 3기와 마주친다. 마하연은 수행자들의 선방이었다. 경허선사와 만공, 효봉, 성철 스님 등 법력 깊은 대승들이 이곳을 거쳤다. 지금은 주춧돌, 계단 파편만 널브러져 있는 폐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대부분이 이곳을 그냥 지나친다.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온 일감 스님은 “마하연 터는 지금의 한국 불교가 태어난 역사적인 곳”이라며 “큰스님들이 모두 여기서 공부하셨다”며 감격해 한다. 그는 황량한 마하연 터를 향해 공손히 합장했다.

30분쯤 걷자, 내금강 관광의 절정인 묘길상이 솟아 있다. 묘길상은 북한어로 문수보살을 뜻한다. 높이 15m의 거대한 부처로 북한 최대의 마애불이다. 손가락 하나가 어른 몸집만 하다. 고려시대 나옹화상이 암벽에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부처의 미묘한 미소를 돋을새김한 솜씨가 경이롭다. 묘길상에서 금강산의 정상 비로봉까지는 6㎞ 남짓. 하지만, 길은 동아줄로 막혀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이념의 금줄이 완전히 풀릴까.
 
승탑만 남은 장안사터(위에)백화암 서산대사비  

#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진 유적… 삼불암, 백화암 부도

하산은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볼거리는 아직 남았다. 표훈사 아래엔 삼불암, 백화암 부도, 김동 시체바위, 장안사터가 있다. 삼불암은 나옹화상이 조각한 미륵불, 석가불, 아미타불이다. 나옹화상은 김동 거사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로 약속했으나, 김동은 성마르게 자리를 탐했다. 제자의 탐욕을 꿰뚫어본 나옹화상은 불상 조각 내기를 해 김동을 굴복시킨다. 나옹의 삼불암은 수작이었으나, 김동이 새긴 육십나한상은 졸렬했다.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낀 김동이 울소에 몸을 던졌고, 그는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백화암 부도 자리엔 서산대사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수천명의 승병을 모아 왜적에 대항한 서산대사를 기린다. 장안사는 고구려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하며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지만, 전쟁의 화마에 전소됐다. 현재 승탑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