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을 사수하라!
지난 7월, 한미 FTA 2차 협상이 우리나라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9월 6일 3차 협상을 앞두고 과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고 미국이 주장하는 내용과 우리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한미FTA 2차 협상 결렬의 이유는 포지티브리스트 때문?
한미 FTA 2차 협상 마지막날인 지난 7월 14일,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 수석대표는 우리나라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시장 개방이라는 FTA 정신에 위배돼 협상을 중단했다고 선언했다. 우리측에서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국민의 건강 증진 및 보험제도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추진하는 보건의료정책으로써 정책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이 시스템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전부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8월 초 미국이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고 21~22일 양일간에 걸쳐 싱가포르에서 작업반 회의가 열렸으나 미국측의 많은 요구사항으로 인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은 수용하지만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그렇다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한정된 재원을 사용하여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최대의 효과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지출액의 비중 조절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의료이용의 증가, 노인인구의 증가 등의 요인을 통해 전체 진료비가 상승하고 있어 이를 맞추기 위해 건강보험수가는 계속 인상되어 왔다. 하지만, 전체적인 의료비 증가 비율보다 약제비의 증가세가 더 커서 2001년 23.5%이던 약제비 비중이 2005년에는 29.2%에 이르렀다. 따라서 약제비 증가세를 잡지 못하면 건강보험수가도 더 큰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약제비 지출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적정화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약의 등재 및 지출의 적정 여부는 국민의 건강증진과 의약품정책관련 제도의 중장기 발전에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며, 동시에 제약산업의 발전 및 건강보험 재정건전화라는 측면에도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미국측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반대, 우리나라의 양보 불가 이유
미국측은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을 수용한다고 밝힌 후 싱가포르에서 열린 작업반 회의에서 ①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의약품에 등재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약 접근성을 보장해 줄 것 ②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인정해 줄 것 ③다국적 제약사가 신약의 보험 약값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의 신청기구’를 설치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줄 것 등을 비롯, 16가지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우리가 수용하게 되면 보건의료정책의 주권을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더 무거운 의약비를 부담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미국측의 주장을 살펴보면 먼저, 소수의 제품만 ‘혁신적 신약’으로 분류되고 있는 현재 상황의 기준을 바꿔 ‘혁신적 신약’의 범위를 넓혀 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약제비 부담이 더 커지게 되어 높은 약제비 비중을 줄이려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무의미해 진다.
실례로 ‘혁신적인 신약’인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약가가 결정된 2004년 2월에는 국내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수가 약 6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3년이 되지 않은 최근 이 약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는 약 1600여 명 정도로 불어났다. 노바티스의 글리벡은 8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되었지만 이미 출시 5년만에 글리벡 매출이 60억 달러에 이르렀다. 단지 하나의 ‘혁신적인 신약’이 이러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면 많은 의약품이 ‘혁신적인 신약’으로 지정될 경우 약제비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보험재정에 위협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를 두자는 제안은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 정착 이후에도 등재될 약품의 종류, 보험 약값 결정, 모든 보건의료정책과 입법 과정에 개입하겠다는 뜻이어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정책주권을 잃게 될 공산이 커진다.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이 포함된 PBS라는 혁신적인 의약품 정책을 운영하고 있던 호주의 경우 최근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의약품 등재에 관해 미국(다국적) 제약사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소비를 촉진시키며 의약품 워킹그룹을 통해 제약사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호주의 의료 전문가들은 ‘이 협상은 호주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제약사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추진했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의 보건의료정책 주권을 훼손당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정부의 기본입장인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되는 부분과 절차적 과정을 구분하여 지킬 부분은 지키되, 제도의 선진화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부문은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수용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밀양시 내이동 장병화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