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수들이 받는다는 심리치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강철 여왕'의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김연아는 18일 국내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성격 자체가 운동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준비 잘되면 긴장 안 해"

물론 김연아도 사람이다. 시즌을 준비할 땐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지만 스스로 이겨낸다. 김연아는 "어릴 때는 실수하면 당황하고 다리까지 떨렸는데,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했다. 실수를 빨리 잊는 걸 보면 운동하라고 타고난 성격 같다"고 말했다. 트리플 플립(왼발 안쪽 에지로 도약해 3회전한 뒤 오른발 바깥쪽 에지로 착빙) 실수에 대해선 "파인 얼음에 스케이트 날이 걸린 것 같다. 플립을 시도조차 못 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젠 실수를 해도 일부러 더 자신 있는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나머지 연기를 잘하면 점수에 큰 영향이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솔직히 실수가 있었는데도 최고점을 세웠으니 앞으로 더 높은 점수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회 때마다 여운을 남기는 게 더 발전할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김연아가 남자와 경쟁한다면?

김연아가 2009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꿈의 점수'로 불리던 200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번에 210점까지 넘어서자, '남자 선수들과의 실력 차'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2009세계선수권 남자부에선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이 242.23점으로 우승했다. 남자부 세계최고점수는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가진 264.41점(2008년 4대륙선수권)이다.

남녀부의 점수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남자부는 프리 스케이팅의 연기 과제 수(13가지)가 여자보다 한 가지가 더 많고, 프로그램 구성점수(스케이팅 기술·전환·수행·안무·해석)에 대한 가중치(2.0)가 여자(1.6)보다 높다. 쇼트 프로그램의 프로그램 구성점수 가중치도 남자(1.0)가 여자(0.8)보다 높다. 이런 채점 체계는 남자 선수들의 전반적인 스케이팅 수준이 여자보다 높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김연아 정도의 기량이라면 남자와 같은 가중치를 적용받을 만하다. 점프는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이나 쿼드러플(4회전)이 불가능하지만, 특기인 '3회전-3회전' 연속 점프를 포함해 기존 점프를 약간씩 재구성하면 남자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스파이럴 시퀀스(활주 연속 동작)를 빼고 스텝 시퀀스를 하나 추가하는 등의 다른 기술적인 차이도 조정하면 된다. 프리 스케이팅에서 점프와 스텝 연기 한 가지 정도의 난도를 낮게 처리하면 체력적인 부담도 덜 수 있다. 이럴 경우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에선 80점(현 개인 최고기록 76.12점), 프리 스케이팅은 150점(현 개인 최고기록 133.95점), 합계 230점이 가능하다. 2009세계선수권 남자부 성적에 대입하면 4~5위권이다. 주니어 시절의 김연아를 지도했던 신혜숙 코치는 "현재 김연아보다 잘하는 남자 선수보다 못하는 남자 선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