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으로 쿠웨이트 건설현장에 파견됐다가 10년 전인 1997년 서울로 망명한 탈북자 림일(39.사진)씨. 그가 북한에서의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책 '평양이 기가막혀'(도서출판 맑은소리)를 펴냈다. 림씨는 '웃음도서'라고 부제를 붙인 이 책에서 종합위락시설인 창광원에 있는 부부탕을 비롯해 평양 사람들의 생활상과 에피소드를 상세히 소개했다.

평양의 처녀들이 꿈의 혼수로 생각한다는 '5장 6기'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불장.양복장.장식장.찬장.신발장(5장)과 TV 수상기.녹음기.재봉기.선풍기.냉동기(냉장고).세탁기(6기)가 그것이다. 아파트나 자동차가 혼수에 오르내리는 우리쪽에서 보면 평범한 물건 같지만 신혼부부의 0.1% 정도 만이 5장6기를 제대로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밤새 생활조절위원회가 다녀갔다'라는 말은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로 통한다. 생활고에 지친 주민들이 남의 물건을 훔쳐 곤궁함을 덜어보려는 것을 '생활조절'로 희화화 한 것이다. 

림씨는 "평양의 어느 부자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인민이 주인된 나라에서 골고루 살아갑시다'라는 편지를 남긴 경우가 있어 한동안 화제가 됐다"고 소개했다.

림씨는 사회안전부(현재의 인민보안성으로 경찰에 해당)와 대외경제위원회를 거쳐 96년 11월부터 쿠웨이트 주재 조선광복건설회사에서 일했다. 이듬해 3월 한국행을 위해 쿠웨이트 주재 한국대사관 문에 들어섰다. 당시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북한 측은 우리 대사관에 "배신자 림일을 내놓지 않으면 대사관 건물을 폭파할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림씨는 "북한이 싫어서가 아니라 남한이 더 좋아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책 서문에서 그는 "나의 어머니 품과도 같은 고향, 평양을 너무 사랑한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두살배기 때 평양에 두고온 딸 미향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이 책에는 미향이에게 보내는 편지도 실렸다. 그는 "내 생일날에 태어나 우리 부부에게 큰 선물이 됐던 미향이에게 아버지는 죄인"이라며 "내가 무슨 망령이 들어 너를 두고 왔는지…"라며 안타까운 아버지의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