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 이모씨(88·전주시 평화동)는 3일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검찰청 직원을 사칭하며 “세금이 연체돼 당신의 금융계좌를 동결해야 한다”며 “현재 지니고 있는 돈의 일부를 계좌이체하고 나머지 돈은 신분증과 함께 직접 전달하라”는 전화를 받았던 것. 이씨는 다급히 2900만원을 송금한 뒤 현금 5500만원을 인출하기 위해 한 금융기관을 찾았다. 다행히 해당 금융기관 직원의 기지로 현금인출을 막았고, 이미 송금한 돈에 대해서도 지급정지 조치를 취해 전화사기를 막을 수 있었다.
이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사기관 관계자라는 소리에 놀라 돈을 보냈는데 노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하다니 괘씸하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관계자도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상대로 ‘직접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보이스피싱 사기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을 노리는 신·변종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현금을 직접 가로채려는 수법까지 등장해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대담·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기범들은 주로 수사기관을 사칭하며 ‘세금이 연체됐다’는 내용을 앞세워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한편 계좌이체를 바로 하지 않을 땐 협박성 전화에 나서며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또 수십개의 전화번호를 보유한 대형사무실의 경우 일련번호에 따라 보이스피싱 전화가 순차적으로 걸려오는 기현상을 연출하는 등 사기행각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는 것. 더욱이 최근에는 계좌이체 외에도 직접 현금전달을 요구하는 수법까지 등장해 수사기관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 계속 진화하면서 피해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현금전달까지 유도하고 있다”면서 “지구대 차원에서 경로당과 장날을 중심으로 노인들에게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집에 혼자 있는 노인·주부들은 거의 한번씩 보이스피싱 유도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을 만큼 전화사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면서 “체납 운운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