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간첩검거 실적이 급감했다. 국회 정보위 소속 권영세(權寧世·한나라당) 의원은 20일 “2000년 이후 올 8월까지 4년8개월 동안 검거한 간첩은 모두 14명으로, 1999년(15명), 1998년(20명)의 한 해에도 못미쳤다”고 말했다.14명 중 북한이 훈련된 공작원을 직접 내려보내는 ‘직파 간첩’을 잡은 것은 한 명도 없었다. 고정간첩도 2명뿐이다. 나머지 12명은 이른바 ‘우회간첩’인데 외국인과 교포, 해외유학 중인 남한 학생 등을 포섭해 간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부터 간첩검거 실적이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우리 사회가 간첩 잡는 분위기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 분위기로 급변한데 첫 번째 원인이 있다는 데 이론이 거의 없다. 전·현직 대공분야 담당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러나 북한이 첩보 전략을 바꾼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 또한 이들의 분석이다. 우선은 북한이 직접 간첩을 남한에 보내야 할 필요성이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남한 사회의 정보 차단벽이 낮아진 것이다. 남북 교류가 자연스러워지면서 남한 내 친북세력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촉할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렸고, 이들로부터 얻는 정보가 직파간첩을 통해 얻는 정보보다 오히려 더 고급인 때문일 것이라고 국정원 한 관계자가 전했다.
또 고정간첩의 상당수가 스스로 ‘전향’한 경우도 많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국정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지난 98년 속초로 침투한 북한 잠수정에서 국내 고정간첩 등 접선 가능한 사람들의 명단을 찾아냈다”면서 “그러나 실제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니 상당수가 이미 전향해 남한 국민으로 잘 살고 있어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복수의 전직 대공 수사요원들은 “남한 내에 무기를 숨겨둬야 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직파간첩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북한은 실제 직파간첩의 호송·안내를 맡고 있는 연락소 조직을 최근 상당폭 감축하고 대신 다른 대남기구들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들은 최근 북한의 첩보 공작이 우회간첩 활용과 함께 제3국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민간인 방북 등을 통한 공작으로 바뀐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양이나 중국 등 제3국에서 남한 내 협조자를 포섭하거나 이들에게 지령을 전달할 수도 있고, 단기간의 밀봉교육을 시킨 사례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북한의 가족을 만나는 조건으로 북한에 포섭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첩보 공작 자체를 축소했느냐인데, 전 국정원 대공수사팀 관계자는 “북한이 남조선 혁명 역량 강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대남 공작 기구를 오히려 확대했다는 점에서 우회 간첩이나 남한 내 협력자 포섭 등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