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연소득 중 원리금 상환액의 비중) 규제 부활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폭발력'이란 단어를 써가며 가계부채 문제가 '국가 리스크(위험)'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작년 8·29 대책으로 DTI 규제를 풀고 난 이후 가계대출 증가 폭이 심상치 않았다. 작년 4분기(10~12월) 가계대출은 20조9447억원 늘어, 가계대출이 폭증하던 2006년(20조9786억원) 4분기 이후 4년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났다.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DTI 규제라는 칼을 뽑아든 것은 가계부채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①빚 갚을 능력 떨어져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9년 현재 143.0%로 부동산 대출이 급증해 위기를 맞은 미국(129.2%)보다 높다. 만약 가계부채가 지금 속도대로 늘어난다면(최근 5년간 평균 증가율 9.5%),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5년에 159%로 높아진다. 이 비율이 높아질수록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저축은행의 부실 가계대출로 위기를 맞고 있는 스페인(137.6%)이나 소비용 가계대출의 연체율이 급증한 포르투갈(144.6%)보다도 우리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지난 10년간 가처분소득이 연평균 5.6% 늘어난 데 비해, 가계 빚은 연평균 13.5% 늘어났기 때문이다.

②3대 취약계층의 파산 가능성 커져

올 들어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3%다. 가계대출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2~3%포인트 높다. 작년 말 현재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5.08%로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금리가 상승세를 지속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7.5%로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약 18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은퇴자·저소득층·자영업자 등 3대 취약계층의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크다. 베이비부머(55~64세) 은퇴자의 경우,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48.0%로 높은 데다 은퇴 후 빚을 갚을 만한 현금 수입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 하위 20%의 경우, 연소득 가운데 원리금 상환액 비중(DTI)이 40%도 넘는 가구가 무려 31%나 된다. 자영업자는 사업을 위해 가계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아 금리 부담이 늘어나는 동시에 매상이 안 좋아질 수 있어 취약하다.

③물가 불안 막는 데 걸림돌

올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 안정이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잡는 정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